아직도 한 여름이다.
물론 절정에 다다랐을 때보단 시원해진 편이지만.
오랜만에 한국친구?언니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.
(이 곳에선 나이가 많든 적든 다 친구먹으니 가끔씩 friend를 언니라고 표현하는 걸 깜빡하게 된다.)
이 곳의 내 생활이 한국말을 듣고 말하는 시간을 참으로 감사하게 만들었는 데,
그래서 그런지 이 모임의 일분 일초가 소중하다.
모두의 런치타임을 위해,
테라스를 어떻게든 만끽해보려 했으나,
아직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.
기다림.
기다림.
이렇게 하루하루, 테라스 앉기 좋은 계절을 기다리다보면,
그 시간이 왔을 때, 진정 그 가치를 실감하고 또 감사하게 될 거다.
그래서 지금의 시간들도 놓칠 수 없는 인고의 시간처럼 느껴진다.
요즈음,
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실망을 적지않게 했더랬다.
사실 그리 친하다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은 연락을 자주 묻고, 관심을 가져주는 데,
오히려 기대했던 사람들을 처음과는 달리 점차 연락이 뜸해지는 걸 실감할 때,
딱히 나도 잘한거 없지만서도,
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게 안타깝기도 했고,
물질적 거리의 차이가 무시할 게 못되는 구나 하고 새롭게 깨닫기도 했다.
어찌되었든,
나도 예전처럼 억지로 관계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에 조금은 지친 것 같기도 하다.
있을 사람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,
갈 사람은 (지금이 아니더라도) 언젠가는 간다는 것.
그러고 보니 생각난다.
<나는 다만, 조금 느릴 뿐이다>의 강세형 작가님의 글 속에서,
'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일 거라는 생각'은 착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.
'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연락하며 지낼 거라는 생각'은 이뤄질 수 있다.
하지만,
'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지금과 같은 관계로 함께일 거라는 생각'은 착각이 맞다.
어쩌면, 나는-
아니, 어쩌면, 나는-
착각을 했다.
그 때 한참 만나고 있던 친구들과 우정이 영원할 줄 알았다.
하지만 그 것은 착각이었다.
어찌되었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는 어떠한 영원도 기대하진 말아야겠다.
그렇지만, 지금보다 더 나은 관계로 함께일 거란 생각은 적어도 착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건 틀림없다.